* 후원자 x 발레리노 AU
* 서양배경으로 영문이름을 사용합니다.
김솔음: Leander Fawn
백사헌: Severin Blanc
* 폭행, 폭언, 납치, 학대 암시 등의 소재 주의!
* 시나리오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시나리오의 원본 링크 : https://www.postype.com/@yelloduck72/post/9761711
* 사용한 인트로 링크 : https://colorname1357.tistory.com/63


(늘 어두운 옷만 입길래 몰랐는데.)


(마차 문으로 몸을 바짝 기울입니다.) 집사 님은 안 가시나요?
두 분 모두 즐거운 시간 보내시길 바랍니다.

(다시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습니다. 움켜쥔 두 손을 무릎 위에 올린 채 굳은 얼굴로 아래를 응시합니다.)




거의 다 왔나 보네요.

벌써 도착해서 실망했어?

아니거든요.

우리 마음이 안 맞네.




근데… 기억은 오래 할걸.
(다리를 꼬고는 무릎에 손을 올립니다.)
나 의외로 뒤끝 긴 편이라서.

(무시했다간 나중에 엄청 후회할 것 같은 예감이 듭니다…)

굳이 서두를 필요는 없지.

(손잡이를 붙잡은 채로 한참을 머뭇거립니다.)




(그러다 이내 민망한 얼굴로 슬그머니 떨어집니다. 시선을 떨군 채 작게 웅얼거립니다.)
……이, 이걸로 봐줘요.

(내가 덮칠까 봐 먼저 입을 맞췄다는 거지. 살기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다던 녀석다운 극단적인 행동입니다.)
(아무래도 버릇을 이상하게 들인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한테도 이럴까봐 좀 무서운데.)

(속눈썹 아래 눈동자가 불안하게 흔들립니다. 입술을 조심스레 깨물며, 작게 숨을 고른 뒤 나직하게 묻습니다.)
……봐주시면 안 돼요?

(잠시 머릿속을 가다듬고는 덤덤한 목소리로 말합니다.)
문 열려고 한 건데.

아이씨, 누가 문을 그렇게……!
아, 됐어요!
(그대로 문을 쾅 젖혀 열더니 마차를 나갑니다.)






(천천히 주변을 둘러봅니다. 속을 숨긴 채 웃고, 마시고, 떠들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 여기도 저기도 누가 누군지 알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무작정 이름을 밝히기도 애매합니다. '저 세베린 블랑인데요, 아시나요?' 이럴 수는 없으니까.)
(그럼 어떻게 접근하는 것이 좋을까. 날 모르는 누군가가, 단지 관심으로 다가오게 만들려면.)
(샴페인 잔을 은반 위에 올린 채 지나가던 직원에게 다가갑니다. 잠시 머뭇거리다가 조심스레 말을 건넵니다.)
저기… 음, 잔 하나 받아가도 될까요?

(사람들 무리에서 약간 떨어진 자리에 홀로 서서, 잔을 든 채 조심스레 주변을 두리번거립니다. 어딘가 어색해 보이는 태도를 일부러 연출하면서.)

아… 네, 티가 났나요?
사실 이런 자리는 처음이라서요… 다들 자연스럽게 어울리시는데, 저는 어디에 있어야 할지 잘 모르겠네요…
(그렇게 말하면서 스스로 부끄러운지 말끝을 흐립니다.)
그럼 파트너 분을 찾아보시는 건 어떠세요? 여성 분과 오셨을 것 같은데.

입구에서 짝은 정해줬는데 서로 모르는 사이라서 인사만 하고 각자 흩어졌어요.
그래서 안타깝지만… 저는 이벤트에는 참여하지 못할 것 같네요.
아직 친분이 없는 상태라는 건 오히려 선입견 없이 더 자유롭게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해요.


(말을 건넨 뒤 문득 놀란 듯 덧붙입니다.)
아…! 혹시 실례되는 질문이었다면 죄송합니다.
(마치 순수한 호기심에 던진 질문이었지만, 뒤늦게 예의를 벗어난 건 아닐까 걱정스러워 하는 듯.)
후원이라고 해도 거창한 건 아니고… 그냥 기회가 될 만한 자리를 연결해드리는 정도예요.

(곧 눈에 띄게 감탄한 표정을 지으며 한결 공손하고 따뜻한 어투로 말합니다.)


아,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 연락주세요.




그때는… 정식으로 제 소개를 드릴 수 있을 것 같네요.

하지만 파티는 이제 시작했으니까요. 또 뵐 수 있겠죠?

기회가 된다면… 다시 뵐 수 있으면 좋겠어요.

(자선 재단이라… 그보다는 개인 후원이 훨씬 더 뜯어먹기 좋은데.)
(어디 적당히 돈 많은 호구 없나. 슬쩍 눈을 굴려 탐색해 봅니다.)

| 기준치: | 60/30/12 |
| 굴림: | 16 |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무엇보다 이 나라에 온 외국인들은 예외 없이 발레에 미쳐 있으니까.)
(손에 든 잔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고 무리 쪽으로 걸음을 옮깁니다.)

이제는 무대 말고 사교 무대에서 날개를 펴시려나 봐?
하긴, 춤보다 돈 많은 놈들한테 꾀 부리는 쪽이 훨씬 편하지. 몸 안 망치고, 고개 몇 번 끄덕이면 되니까?
네가 떠난 이후로 관객이 모이질 않는단 말이다. 벌써 빚이 산처럼 쌓였다고…

(그리곤 구두발로 단장의 종아리를 세게 걷어찹니다.)

이봐,

넌 내가 그 극장에 불 안 지른 걸 다행으로 생각해.
네가 나한테 한 짓을 생각하면… 마음 같아서는 죽여버리고 싶으니까.


| 기준치: | 65/32/13 |
| 굴림: | 12 |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아마 술에 취하셔서 저를 다른 사람으로 착각하신 것 같아요…




(어두운 표정으로 안에 들어섭니다.)

| 기준치: | 65/32/13 |
| 굴림: | 56 |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몸, 몸이 왜 저래. 어쩌다가 저런 지경이…)
(설마 집사가 말했던 '약'이라는 게 저 몸을 치료하기 위한…)



네, 뭐… 조금은요. (자신의 팔뚝을 쓸어내리며 머쓱하게 말합니다.)
근데 어떻게 된 거예요? 그 몸…

(세베린을 물끄러미 보다가 손짓으로 부릅니다.)



| 기준치: | 70/35/14 |
| 굴림: | 51 |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이걸 봤다고 이제 와서 날 없애버릴 것도 아니고.)
…왜 이렇게 된 거예요? (조금 낮은 목소리로 담담히 묻습니다.)



| 기준치: | 65/32/13 |
| 굴림: | 57 |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주사, 이거 뭐… 저보고 어떡하라고요.


도대체 제 뭘 믿고 이런 걸 맡기시는 건데요?

나도 그러는 것뿐이야.

…잘못돼도 저한테 뭐라 하지 마세요.
(그렇게 말하고는 짧게 숨을 들이쉰 뒤, 검게 도드라진 선에 바늘을 꽂아 넣습니다.)



보이는 그대로 나는… 온전히 살아있는 사람이 아니거든.

그 탓에 이 약 없인 정신도 몸도 제대로 버티기 힘들지.


그래서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몸을 뒤로 기대며 세베린을 슬쩍 올려다봅니다.)
그 ‘방법’이란 게 이 도서관 지하에 있는 장서들 중 하나에 있을 거라고 추측하고 있거든.

저보고 찾는 걸 도와달라는 거예요?



네가 그랬지. 도와주겠단 말, 아직 유효하다고.
그러니까… 부탁할게. 도와줘.

(왜 하필 저런 눈으로…… 착잡하게 한숨을 쉬며 뒷머리를 매만집니다.)
(수당 한 푼 없는 허드렛일은 피하는 게 상책이고, 심지어 위험하기까지 한 일은 뒤도 안 돌아보고 거절하는 게 옳다고─지금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솔직히… 뭔 개소린가 싶긴 해요. 그래도 그쪽이 이런 걸로 헛소리할 사람은 아니니까.
…그리고 도와주겠단 말도 제가 먼저 꺼낸 거니 약속은 지킬게요.
대신 계산은 확실히 해주셔야 돼요.

…고맙다.

알면 됐어요.

적어도 당황은 할 줄 알았거든.

그리고 평범한 인간일 리 없다는 것도요. 5년 전이랑 지금이랑 하나도 안 변했으니까.

(눈썹을 살짝 치켜올립니다. 하지만 힐난의 느낌보다는 오히려 흥미롭다는 표정입니다.)
그런데 용케 도망치지 않았네.
너 도망치는 건 선수잖아.



원래도 유령보단 인간이 더 무섭죠.
그리고 그쪽 옆에 있으면 알아서 콩고물이 떨어지는데, 굳이 그런 멍청한 짓을 왜 해요?

난 유령이 더 무섭던데.





죽으면 이상형이고 뭐고 다 무슨 소용이에요.
됐으니까… 그냥 살아요.
(잠시 머뭇거리다가 조용히 덧붙입니다.)
…저도 그게 더 좋으니까.

너, 진짜……



그래서, 그 장서라는 건 어디로 가야 찾을 수 있는데요?

…그 뒤부터는, 미안하지만 네가 스스로 찾아야 할 거야.


너 그런 거 잘하잖아. (웃으면서 말합니다.)

그럼 누구도 네가 한 짓이라고 생각 못할 테니까.


혹시 단서 같은 건 없어요?

절대 펼쳐보지 말고, 그대로 가져와.




(가장 가까운 서가부터 차례로 하나씩 살펴보기 시작합니다.)

| 기준치: | 60/30/12 |
| 굴림: | 13 |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꺼내서 펼쳐봅니다.)


| 기준치: | 70/35/14 |
| 굴림: | 36 |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리앤더도 이 사실을 알고 있는 걸까? 그럼… 노닥거리면서 여유 부리고 있을 때가 아니었잖아!)
제길… 그 검은 책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거야.


| 기준치: | 60/30/12 |
| 굴림: | 23 |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의심스러운 눈길로 바라보다가, 조심스레 다가가 손으로 책장을 더듬으며 살펴봅니다.)

(눈을 가늘게 뜬 채 책장을 주시하며 조용히 생각을 굴리기 시작합니다.)
(아이디어 굴려보겠습니다.)

| 기준치: | 70/35/14 |
| 굴림: | 15 |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꺼낸 책들을 차례대로 늘어놓고, 망설임 없이 다시 책장에 꽂아 넣습니다.)

(서둘러 책을 꺼냅니다.)

(자신과 상대의 몸을 맞바꾸는 주문이라니. 이런, 이런 게 왜… 설마…)
(혼란과 배신감이 서로 뒤섞여 머릿속에 휘몰아칩니다. 식당에서 잡지를 발견했을 때도, 리앤더가 처음 입을 맞췄을 때도 느끼지 못했던 거대하고 무거운 감정이 가슴을 짓눌러옵니다.)
……
(궁금했습니다. 그가 품고 있던 죄책감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그가 말했던 ‘원하는 것’은 과연 무엇인지.
그리고 왜 5년 동안 나를 후원하며, 이렇게까지 잘해줬는지.)
…(그에 대한 답이 설마 이것이라면…)
……
……하,
(머리가 복잡합니다. 아니. 아니야. 아픈 것 같습니다. 뇌 한쪽이 지끈거리고, 욱신거리면서… 점점 더 심해집니다. 분노에 가까운 충격과, 멍청한 짓을 하고 있었다는 자괴감이 물밀듯이 밀려옵니다.)
……씨발, 진짜, 후우……
(두통에 숨이 가빠집니다. 어질어질한 머리를 몇 번 주먹으로 때리며 눈을 꾸욱 내려감습니다.)
…(여기 혼자 있다가는 돌아버릴 것 같습니다. 일단 나가자… 울렁이는 속을 간신히 억누르며, 파티장으로 돌아갑니다.)


수고했어.

…손 치워.

(마치 5년 전, 처음 만났을 때로 돌아간 듯한 싸늘하고 경계 어린 눈빛에 당황합니다.)

너… 도대체 뭐하는 놈이야? 목적이 뭐길래… 이딴 말도 안 되는 주문을 왜 나한테 찾아오게 한 거냐고!

(한참 뒤에야 고개를 들어 세베린을 바라봅니다. 눈동자는 담담한 듯하지만, 그 안에는 말로 다 하지 못할 정적과 오래 묻어둔 감정들이 엉켜 있습니다.)
……봤구나.
(목소리는 낮고 조용합니다. 억지로 침착함을 유지하는 표정 뒤로 눈가가 아주 미세하게 떨립니다. 무어라 말할지 망설이다가 결국 짧게 숨을 내쉽니다.)
변명은 하지 않을게.
……미안해.

참 재밌었겠어. 바꿔치기 당할 줄도 모르고, 의미가 되어주겠다느니 그딴 말 지껄이면서 놀아나는 꼴 보는 게.
…진작 알았어야 했는데. 네가 개싸이코패스 새끼인 거.


(핏발 선 눈동자로 노려보며 독하게 내뱉습니다.)
그냥 죽어버려.


(책을 내던지며 등을 돌립니다. 그리고 매몰차게 말합니다.)
다신 내 앞에 나타나지 마.
(그대로 파티장을 나갑니다.)

…(출구 밖으로 나오고서야 손등을 입가에 대고, 얼굴을 찡그리며 숨을 고릅니다.)
씨발……

(하지만 곧 생각을 떨쳐내고 걸음을 옮깁니다. 계획을 들킨 미친자식이 어떻게 나올지 모르니 당장이라도 짐을 싸서 거처부터 옮겨야 합니다.)


그럼 마차에 올라주시지요.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어차피 후원하고 후원받는 관계일 뿐인데요. 사이 좋을 게 있나…
그 잘난 집이랑 돈으로 친구 하나 제대로 못 사귄 모양이죠?
저도 오랜 시간 곁에서 모셨지만, 그분 마음속 깊은 내막까지는 알지 못합니다.

집사로서 기쁠 수밖에 없지요.



(불길한 느낌에 살짝 몸을 뒤로 뺍니다.)
그런 감정들은 인간을 가장 망치는 것들이라 예로부터 알려져 왔습니다. 그런 재앙 같은 것에는 리앤더라 할지라도 무력하게, 멍청한 놈처럼 휩쓸릴 뿐이고…



이봐, 지금 어디로 가는……!

(최대한 숨을 참고 발버둥치며 몸을 비틉니다.)
저항은 무의미하지. 너 또한 이 변화를 받아들이는 게 좋을 거야…

(젠, 장……)
(끊어지는 숨결 사이로 욕지거리를 내뱉다가 이내 고개를 한쪽으로 천천히 떨구고… 결국 까무룩, 정신이 끊깁니다.)

(시야는 흐릿하고, 공기는 탁하고, 머릿속은 안개가 자욱하게 낀 듯 멍합니다.)

윽……! 씨발, 뭐야. 이거…


| 기준치: | 69/34/13 |
| 굴림: | 77 |
| 판정결과: | 실패 |
이성 감소 : 2

대체… 이게 무슨……

리앤더 놈이 널 찾으러 제발로 여기까지 온 후에, 나란히.

(이대로는 개죽음 당할 뿐입니다. 씨발, 어떻게든 해야……묶인 팔을 온 힘을 다해 버둥거립니다.)


(머리채를 사납게 잡아당기는 힘에 고개가 확 젖혀지며, 날카로운 통증이 두피를 타고 번집니다. 비명이 저절로 터져 나오고 눈앞이 아찔하게 흔들립니다.)
안 그럼 네 눈동자부터 파낼 거니까.

…알겠어요! 안 할게요… 잘못했어요…!

(그 와중에도 무대는 또렷하게 눈에 들어옵니다. 살점이 말라붙은 발레리나의 퀭한 안와, 그 텅 빈 구멍 속으로 번들거리는 검은 벌레가 느릿하게 기어들어가는 것이 보입니다.)
……! (숨을 들이마시는 것도 잊은 채, 그대로 굳어버립니다.)


(힘겹게 살살 웃으면서 말합니다.)

저, 그…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무대가 조금 허전해 보이는 것 같은데요…

아니요! (다급하게 말합니다.)
…제 말은 그런 뜻이 아니라 이, 인원이 너무 적어서… 단장님이 의도한 연출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는 것 같아서요…!
제, 제가 잘못 본 건가요?

혹시 제가 좀 도와드려도 될까요…?

Artic Owl 발레단, 아시죠? 제가 소속되어 있는 곳이요…! 거기엔 젊고 재능 있는 무용수들이 많으니까 단장님이 만족할 만한 소재도 충분할 거예요…!

뭐, 그런 놈으로 키운 건 나다만.

(속으로 욕을 씹어삼키며 절박하게 말합니다.)
그렇, 죠…! 예전에 단장님께 많이 배웠죠…! 앞으로도 옆에서 열심히 도울 테니까 계속 가르쳐주시면 안 될까요? 네? 부탁드릴게요…


(예상치 못한 공격에 몸이 무방비하게 앞으로 쏠립니다. 그대로 바닥에 내던져지듯 넘어지자 흉부에 둔탁한 충격이 파고듭니다.)
윽… 컥… 헉…
(숨이 턱 막히는 고통에 얼굴이 일그러지고 몸이 저절로 뒤틀립니다. 거칠게 솟구치는 기침을 애써 삼키며, 두려움에 물든 눈으로 단장을 올려다봅니다.)

(가슴이 뻑적지근하게 조여옵니다. 억눌린 신음을 흘리며 깔린 몸을 괴롭게 뒤척이다가 결국 터트리듯 외칩니다.)
……진짜예요! 믿어주세요…!
널 여기까지 끌고 온 그 집사 놈도 말야, 돈 몇 푼 쥐어주니 어찌나 순순히 넘어오던지!
리앤더 놈이랑 몇 십년을 같이 일했는데도!

하… 하지만 단장님, 한번만 생각해 보세요. 금전 조달부터 무대 준비, 납치까지… 그걸 전부 혼자 하시겠다고요? 저… 어차피 도망 못 쳐요. 그러니까 끝까지 써먹고 마지막에 버리셔도 늦지 않잖아요.
필요한 건 뭐든 가져다드릴게요. 돈도, 물건도, 사람도… 제가 할 수 있는 건 뭐든, 무조건 협력할게요!
…솔직히 저만큼 단장님 곁에 오래 머문 사람, 이제 없잖아요. 단장님이 어떤 무대를 꿈꾸고, 어떤 예술을 추구하는지… 저, 진짜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요!
그러니까 도움이 될 거예요! 분명히!
표정도 행동도 어느 것 하나 진심이라곤 없지… 가식적인 놈! 돈만 쥐어주면 몸을 굴리는 게 창놈이랑 다를 게 뭐냐? 그런 주제에 감히 극을 논해?!

(머리 위로 들린 술병을 보자 얼굴이 파랗게 질립니다. 차마 피할 생각도 못 하고, 맞을 준비라도 하듯 몸을 와락 웅크립니다.)

……허…, 허억……
(폐가 안으로 쪼그라드는 듯한 감각. 과호흡에 시달리듯 가슴이 가쁘게 들썩이고 입술이 파르르 떨립니다. 물기 어린 시야가 빙글빙글 돕니다.)
(겁에 질린 눈으로 간신히 중얼거립니다.)
사, 살려주세요, 단장님……

……제발……
(목소리는 끊어질 듯 가늘고 떨립니다. 눈물에 번진 시야는 뿌옇게 흐려지고, 죽고 싶지 않다는 본능적인 공포가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질리지도 않고 간절히 애원합니다.)
뭐든… 뭐든지 할게요… 제발, 죽이지만 말아주세요…
앳된 맛은 사라졌지만… 이게 더 마음에 드는군. 내 손을 벗어난 5년간 잘도 컸어…
맞을까 봐 벌벌 떨며 필사적으로 빌던 그 얼굴… 그래그래… 잊고 있었지. 다시 보니 기분이 좋아지는데. 흐흐… 적어도 이 얼굴 하나만큼은, 아직 쓸모가 있겠어.

(숨통을 조여오는 손에 온몸이 경직됩니다. 두 눈을 부릅뜨고는 발끝으로 바닥을 밀며 몸을 뒤로 빼내려고 합니다.)

| 기준치: | 70/35/14 |
| 굴림: | 89, 95, 89 |
| +2: | 실패 |
| +1: | 실패 |
| 0: | 실패 |
| -1: | 실패 |
| -2: | 실패 |
지금도 가장 후회하는 일 중 하나야. 그날 너한테 그놈을 데려간 게…!

(목소리는 갈라지고 떨리는 숨결이 절규로 변합니다.)
윽, 이거, 놔…! 놓으…라고…!
(발끝을 바닥에 필사적으로 굴리며 온 힘을 다해 몸을 비틀다가… 이대로는 벗어날 수 없다는 걸 깨닫고 묶인 팔로 바닥을 허겁지겁 훑습니다. 유리조각, 유리조각이라도…!)

| 기준치: | 50/25/10 |
| 굴림: | 26 |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예리한 단면으로 밧줄을 서둘러 긁습니다. 호흡과 머리로 가는 혈류가 차단되어 머리가 몽롱해지지만 필사적으로 힘을 짜냅니다.)

| 기준치: | 60/30/12 |
| 굴림: | 63 |
| 판정결과: | 실패 |
(행운! 행운 깎겠습니다!)

(손이 자유로워지자마자, 쥐고 있던 유리조각으로 단장의 팔을 무자비하게 찍어버립니다.)

(거칠게 기침을 쏟아내며 욱신거리는 목을 손으로 감싸쥡니다.)
(그리고 숨 고를 틈도 없이, 아까 파티장에서 걷어찼던 그 다리를 향해 온몸의 힘을 실어 거칠게 발길질을 날립니다.)

(다리가 후들거리지만 어떻게든 뛰어갑니다. 지금 멈추면 진짜 끝이니까.)

(숨이 가빠옵니다. 갈비뼈가 쑤시고 폐가 찢어질 듯한 고통이 몰려와도, 머릿속엔 단 한 가지 생각만 가득합니다. 살아야 해.)




(식은땀이 목덜미를 타고 오싹하게 흘러내립니다. 심장은 목구멍까지 튀어나올 듯 뛰고 속이 울렁거려 자꾸만 헛구역질이 나옵니다.)
안 돼, 안 돼… 씨발, 뭐라도…(떨리는 손으로 다급하게 탁자 위를 뒤집니다.)

(여차하면 불이라도 질러 위협할 셈입니다. 단장 저 미친새끼가 이곳을 유독 아끼는 것 같으니 이걸로 협박하면 어떻게든……)


(도서관 지하에서 봤던 가짜 책장이잖아!)
(그때처럼, 알파벳 순서대로 책을 하나하나 제자리에 꽂아넣습니다.)

(……바보 같은 짓이라는 건 알고 있습니다. 그 자식은 날 엿먹이려고 했고, 내가 죽을 뻔한 상황에서 코빼기도 안 비치고 있는 데다가, 지금 난 뒤를 돌아볼 여유조차 없으니까.)
(그래도……!)
젠장……(이를 악물고 파일을 낚아채듯 움켜쥔 뒤, 다시 계단 쪽으로 달려갑니다.)

좆까, 개새끼야! 여기서 불타 뒈져버려!!
으아악─ 끄, 으으, ㅇ──!


(마치 다이빙하듯 온몸을 내던집니다. 발끝이 불길에 스치기 직전, 간신히 문턱을 넘어 바닥을 굴러 빠져나옵니다.)

……하아…
(온몸으로 숨을 몰아쉽니다. 들이마시는 공기의 열기가 뜨겁습니다. 심장은 폭주하듯 뛰고, 팔과 다리는 맥없이 떨립니다. 재와 피는 식은땀과 뒤섞여 얼굴을 타고 흘러내립니다.)
(그런데도—웃음이 비실비실 새어 나옵니다. 미쳐버린 건지, 아니면 살아남았다는 사실이 기가 막힌 건지.)
(입매를 씰룩이며 비틀린 웃음을 그리다가 그대로 털썩 주저앉습니다.)
(등 뒤로는 여전히 타오르는 소리가 들리고 매캐한 연기가 옷에 달라붙습니다. …아직 끝난 건 아닙니다.)
(하지만 지금만큼은, 숨을 돌려도 되겠죠.)

……(잠시 입을 다문 채, 메마른 침을 삼킵니다.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천천히 페이지를 넘기기 시작합니다.)




너, 피가……!
(초조한 손길로 피 묻은 부위를 조심스레 살피다가, 큰 상처가 아닌 걸 확인하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쉽니다.)
일단 빨리 병원에 가자, 지금 당장.






…다리도 망가진 주제에, 뭘 할 수 있는데.


그래도… 너를 혼자 둘 수는 없잖아.

하! 미친새끼……
날 죽이려고 접근한 주제에 이제 와서 그딴 개소리를…

나는… 어떻게든 살아남고 싶었으니까.


…하지만 네 무대를 보고, 네가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문득 생각이 들었어.
내가 살기 위해 널 희생시켜도 되는 걸까?
그런 이기적인 마음이 정당화될 수 있을까?
……내 못난 집념 때문에 너를 상처 입히고 싶지 않았어.

그런데 네가…
네가 내 삶의 의미가 되어주겠다고 하는데, 어떻게 그러겠어…
그 이후로는 어떻게든 다른 방법을 찾아 너와 함께 살아가고 싶은 마음밖에 없었어.
너한테는 핑계처럼 들리겠지만…
이게 내 진심이야.

……그래서, 그게 끝이야?


너 때문에 입은 정신적, 신체적 피해는 어떻게 보상할 건데.
당장 몇 시간 후면 공연인데 이렇게 너덜너덜해져서 무대 못 오르면 손해가 얼마인지 알아?
허락도 안 받고 입술 비벼대고 만지작거린 건… 그냥 넘어갔지만 그거 범죄야, 미친놈아.



보상이라면 얼마든지 요구해. 다 해줄 테니까.

그럼, (고개를 들고 리앤더를 똑바로 바라봅니다.)
죽을 수도 있나?

어차피 곧 죽을 몸이니까 그 정도면 싸게 먹히는 거지.
…네 손으로 네 이상형을 만들겠다면, 말리진 않아.



(그런데도, 자꾸만…)
(하, 이상하지. 이 자식 앞에만 서면 꼭 바보 등신이 되는 것 같아.)
……
(…발레극이란 진부합니다. 다 거기서 거기죠. 뻔한 이야기, 뻔한 감정, 정해진 레일 위를 그저 따라갈 뿐.)
(하지만 이 극만큼은 다릅니다. 이건, 내가 정하는 이야기입니다. 결말도, 운명도──내 선택에 달려 있죠.)
(리앤더를 죽일지, 살릴지. 그조차 내가 결정할 수 있다면…)
……
(나는… 그를 구하는 선택을 하겠습니다.)


(……그리고 소생 주문을 속삭입니다.)
마력 : 5 이성 : 2


이게, 무슨…


와… 지금 표정 진짜 멍청해 보인다.
뭐, 됐고. 이거 다 빚이니까 살아서 천천히 갚…

(이 개자식이 방금 말했는데 또…!)



(잠깐, 너무 길잖아! 숨 막혀…!)
(그런 항의조차 리앤더의 탐욕스러운 입맞춤에 그대로 삼켜집니다. 가슴이 쿵, 하고 요동칩니다. 이게 분노인지, 당황인지, 아니면 다른 감정인지 스스로도 확신할 수 없어서…)


…너, 이거 책임져야 해.

책임은 네가 져야,

(행복한 얼굴로 속삭이더니 지겹지도 않은 듯 다시 입맞춤을 남깁니다. 쪽쪽.)

(귀찮은 게 달라붙은 기분인데. 역시 그냥 떼어버릴 걸 그랬나…)
(…그래도 밀어내진 않고 얌전히 있습니다.)



내가 네 이상형이 되는 것보다 네가 내 이상형이 되는 게 더 빠를 줄은 몰랐거든.

(기억을 되짚다가 이내 생각이 났는지 발끈합니다.)
아니거든요! 무슨 말도 안 되는 개소리를…

근데 왜 존댓말로 돌아왔어? 네가 편한 대로 해도 괜찮아.

그래도 그쪽이… 나이가 더 많으니까요. 30년 전이면 완전 옛날 사람인 거잖아요.
아무튼 이상형 아니라고요! 언제든지 떠날 수 있거든요?


그래도 이 도시는, 아무래도 떠나야 할 것 같아.


거절할 거라는 거, 알고 있죠?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새삼 깨달았다는 듯 말합니다.) 저는… 발레를 해야 해요.
솔직히 대단한 사명감이나 꿈이 있는 건 아니에요. 그래도… 그동안 열심히 해왔으니까.
(살짝 볼을 긁적입니다.)
…그리고 그쪽 덕분에 보람이라는 것도 느끼게 됐고, 제 무대를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다는 걸 알았으니까요.
그러니까,
그 모든 걸 버리고 한 사람만 믿고 훌쩍 떠나는 짓은…
아직 저한텐 무리예요.




(머쓱한 듯 자기 머리카락을 쓸어내리며 리앤더의 손을 잡고 몸을 일으킵니다.)

…다시 만날 수 있는 거죠?

네가 싫다고 해도 만나게 될 거야.

가세요.

네가 온전히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할게.
언젠가 네가, 내 곁이라면 모든 걸 내려놔도 괜찮겠다고 느낄 수 있도록.



이제 얼른 가요! 몸 조심하시고요.



사랑해, 세베린.

…아, 진짜… 헤어질 때 그런 말 하는 거, 되게 치사한 거 알죠.
왜 자꾸 사람을 바보 만들어요…? 저 원래, 진짜 안 이러는데.
(그러다 슬쩍 눈만 들어 그를 쳐다보더니, 약간은 퉁명스럽게 말을 잇습니다.)
…답은, 나중에 다시 만났을 때 해드릴게요.

그래.
그걸로 됐어.